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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 Motorsport/Fun to Ride

알페온(Alpheon), Highway impression

안녕하세요? 필진 스미노프입니다.

알페온 시승차로 고속도로를 달려볼 기회가 생겼고 그 때 받은 간단한 인상 정도를 써볼까 합니다.
주행한 도로는 대구-부산 고속도로, 약 120km 구간으로 매끄럽지만 자잘한 요철이 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였습니다.

알페온의 첫인상은 "거대하다" 입니다. 단순하지만 굵직하고 시원하게 뻗은 디자인입니다. 크롬 장식이 상당히 쓰였지만 차체의 선 자체가 단순해서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습니다.
시승차는 3리터 V형 6기통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으며 18인치 휠과 타이어가 적용된, 소위 말하는 "풀 옵션"보다 바로 아래 단계의 차량이었습니다. 최상위 단계가 아니어도 스마트키, 통합 디스플레이(네비게이션, 공조장치, 오디오 장치 등)를 포함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편의장비가 들어가 있습니다. 다만 선루프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문과 천장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실내의 거의 모든 부분은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가죽 자체는 인조가죽이지만 잘 어울리고 "제법 고급스럽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계기판은 요새 나오는 현대/기아 자동차에 비하면 많이 절제되고 수수한 편입니다.
중앙에 버튼이 모여있어서 기능이 많아보이고 정돈된 느낌이기는 하지만 한번에 척 보고 원하는 기능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한참을 보고 찾아야 찾을까 말까... 익숙해지면 찾겠지만(GM대우의 다른 자동차와 버튼 배열을 공유한다고 해도) 사용자에게 친절한 인터페이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네비게이션과 터치스크린의 기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네비게이션에서 경로를 한 번 지정하는데 터치해야 하는 횟수도 타사의 그것보다 최소 2,3번은 많이 눌러야 했고, 또 터치 후 반응은 느려 터진 데다가, 터치감도 떨어지고, 검색 기능이 탁월하지도 못해서 할 수만 있다면 다른 회사 제품으로 갈아끼우고 싶은 네비게이션입니다. 부산에서 현재 위치와 가까운 스타*스 커피집을 찾는 데 검색을 3번 이상 하고도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차가 거대한 만큼 실내공간 역시 거대하지만, 그 거대함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변속기 주변의 센터콘솔은 꽤 높게 올라와 있어 신체조건에 따라서는 오른쪽 다리와 센터콘솔이 닿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원래 이 공간은 알페온의 원형인 뷰익(Buick)  LaCrosse의 상시4륜 구동 관련 부품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이유가 그렇다 하여도 차 크기에 비해서 운전석과 조수석 공간 활용도가 떨어졌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수납공간도 타사 차량에 비해서 많이 줄었습니다.

운전 포지션은 짧은 시간에 편하게 잘 맞출 수 있었습니다. 시트는 요즘 나오는 여느 차량들과 같이 잘 맞고 편안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시트에 제대로 앉아서 앞을 봤을 때 상당히 시야가 갑갑했습니다. 유리와 운전석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차체의 기둥이 가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시트 포지션을 조금 높이니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갑갑한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트렁크나 뒷좌석은 동급의 어느 차량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넓은 편입니다. 이 점은 차 크기에서 나타나는 알페온 특유의 장점입니다. 일일이 수치를 써놓진 않았지만, 렉서스의 ES350과 비교해도 차 자체가 이미 길이도 길고 폭도 더 넓습니다. 높이도 마찬가지고요.
전반적인 주행느낌은 딱 GM대우스럽습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크루징이 특징입니다.
페달 느낌은 제가 선호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주관적인 취향입니다) 브레이크 페달은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설정하려고 한 의도는 보이지만 밟히는 느낌 자체가 녹은 초콜릿을 발로 만지는 기분입니다. 또렷하고 정확한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단한 것도 아닌 끈적이고 애매한 기분. 제동력이나 제동 시 반응은 잘 마무리된 느낌이지만 페달 감각이 제 취향에는 영 아니었습니다. 가속페달은 적당히 무게가 있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밟는 데 좀 반응이 와야 내가 운전한다는 느낌이 들텐데, 이건 상당히 차와 운전자가 격리되어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특히 6단으로 1100rpm~2000rpm으로 주행 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변속기에서 초반 토크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엔진은 스포츠카 같은 빠른 반응과 강렬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 변속기와 조합이 좋지 않습니다. 변속은 엄청 느린데다가 직결감도 떨어지는 등, 단순히 느긋함의 특징으로 봐주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조합입니다. 전자식 쓰로틀로 가려지고 변속기에 묶여서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알페온에 탑재된 3리터 엔진은 동급의 타사 엔진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63ps의 최고 출력이 발생하는 시점이 6900rpm으로 상당히 고회전에 위치합니다. 이번에 출시되는 그랜저 5G의 3리터 사양은 270ps의 출력이 6400rpm에서 발생합니다. 500rpm의 차이는 별 의미 없어보이지만 최대출력 발생시점 차이는 전반적인 출력 특성도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최대토크 역시 알페온은 29.6kgf-m/5600rpm, 그랜져 5G는 31.6kgf-m/5300rpm입니다. 절대적인 수치 비교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발생 시점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리미엄 세단을 지향하면서 스포츠카 같은 엔진 느낌이 꽤 흥미로워서 미국 쪽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알페온의 3리터 엔진은 보어 X 스트로크가 89mm X 80mm (3.5inch X 3.15inch)로 단행정(short-stroke) 엔진이며 압축비는 11.7 : 1의 사양입니다. 통상적으로 세단의 엔진은 압축비가 11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북미형 아제라 람다 3.3 mpi 사양의 경우 10.4 : 1) 대단한 고압축비 엔진입니다. 흔히들 고압축비 자연흡기 엔진이라고 말하는 혼다 S2000에 탑재된 F20C 같은 경우가 11.7 : 1의 압축비를 가집니다. 그것도 일본 내수 사양의 경우고 북미사양에선 11.0 : 1입니다.

단행정과 고압축비 외에도 여러 요소가 작용하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알페온의 엔진은 악셀을 끝까지 밟으면 호쾌한 배기음과 함께 기분 좋은 회전상승을 보입니다. 정말 좋은 회전느낌이고 순식간에 회전계 바늘을 오른쪽으로 꺾어버리는 맛이 좋습니다.
좋지요... 좋습니다. 그런데 어째 엔진을 한껏 돌리는대로 차가 나갈 것 같지만........... 나가지 않아요.
"오옹, 오로로오오오 웅~!" 하고 회전을 다 쓰면 바로 다음 단수로 넘어가서 또 밀어붙여야 하는데 변속기가 기어를 바꿔줄 생각을 안 해요.
(정확히는 변속이 늦는 거지만...)
결국 밟다가 맥이 빠져서 "뭐야..." 하고 발을 놓게 되는 거죠.

밟아도 나가는 느낌이 영 무거운 것은 진짜 무게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몇 대 정도 비슷한 급이라고 생각하는 차들의 무게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K7 VG350 : 1,620 kg
Lexus ES350 : 1,635 kg
Mercedes-Benz E350 Sedan : 1,735kg (북미 2011' 사양 기준)

이 무게는 한국에 발표된 공차중량이 아니라 북미에 발표되는 curb weight 입니다.(국내 자료 찾기가 더 힘들어서 부득이하게..)
(규정량의 엔진오일, 워셔액, 미션오일을 비롯한 모든 오일류/케미컬을 포함 연료는 가득, 화물은 없음. 운전자와 승객은 제외)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알페온은 얼마쯤 나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벤츠는 다들 무겁다잖아, 벤츠보다는 가볍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시는지요?

GM대우 Alpheon : 1,785kg (GM대우 한국 발표 공차중량, 3리터 엔진)
Bucik LaCrosse CXL FWD : 1,826 kg (알페온의 원형인 뷰익 LaCrosse에서 알페온과 가장 비슷한 옵션의 모델, curb weight)

알페온이 무겁다고 몰아가는 것처럼 보일까봐 타사 자동차들은 모두 3.5리터 모델의 무게를 찾아봤습니다.
무게는 알페온이 더 무겁고, 엔진은 고회전 고출력 특성을 가지니, 초기 반응이 빠르기가 참 힘든 조건입니다.
연료 소모도 동급 차량들 보다 많을 수 밖에 없지요.

무게가 무거운 차를 선호하시는 분들은 알페온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무게가 무거운 만큼 연비는 좋지 못합니다. 알페온의 공인연비는 9.3km/L 입니다. 현대 에쿠스 3.8리터 람다의 효율인 9.3km/L랑 같습니다. 벤츠 E350은 9.2km/L로 알페온은 벤츠E350보다 0.1km 앞섭니다.

승차감은 단단하고 무게감 있습니다. 무게감이 아니라 정말로 무겁지요. 또, 탄탄하긴 탄탄한데 그 탄탄함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콘크리트 노면의 잔잔한 진동은 걸러줬으면 하지만 그것이 좌석을 비롯하여 스티어링에까지 전달되어 올라옵니다. 전반적으로 알페온의 느낌이 그렇습니다. 이런 건 충분한 강점이 될 수 있는데…하면서도 그걸 잘 살리질 못하는 인상입니다. 렉서스 특유의 부드러움과 나긋나긋함, 벤츠의 소파에 앉은 기분, 요즘 기아자동차의 세단답지 않은 스포티함도 아닌, 하드하게 조여놨지만... 묵직하지만... 묵직하지만.... 그래서? 이런 느낌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운동특성이 그다지 밸런스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원래 상시4륜구동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자동차라서 그런지 전륜구동인 알페온은 무게 밸런스가 더 안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전륜구동 차량들은 필연적으로 앞이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알페온은 그 정도가 좀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차선변경, 큰 코너링과 같은 조작을 하게 되면 앞쪽의 하중이 이동하는 양상과 뒤쪽의 하중이 이동하는 양상에 너무 큰 차이가 있어서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뒤가 앞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니라 급격히 말려드는 느낌입니다. 근본적으로 앞이 너무 무겁고 뒤에는 무게 자체가 얼마 실려있지 않아서, 뒤의 하중이동이 앞보다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가벼우면 관성이 작기 때문에 하중이 옮겨가는 속도 자체가 빠릅니다. 만일 상시4륜 구동이라면 구동계 부품이 뒷쪽도 무게를 증가시켜서 이런 현상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프리미엄 세단으로서 갖춰야 할 상품성은 갖추고 있습니다. 동급대비 큰 차 크기, 렉서스와 견줄만한 정숙성, 딱히 모자라지 않은 편의장비 등 있을 것은 다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있을 것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경쟁사의 다른 차량 대신 알페온을 선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있을 뿐 알페온을 선택할 만한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지, 저는 그것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가솔린 소비량 World Class Luxury, Alpheon

덧붙이는 글)
1. 각종 차량의 데이터는 대부분 http://autos.yahoo.com을 참조하였습니다. (검색의 편의성이 주된 이유입니다.)
각 국가별 사양, 측정 방법에 따라 무게 데이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 벤츠 자료에는 E300(ULEV)가 1735kg, E350은 1815kg인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비교의 객관성을 위해 무게 비교는 가능한 yahoo(US) Autos의 자료를 참고로 했음을 밝힙니다.
2. 미국 데이터의 inch, lb는 네이버의 단위환산기를 이용하여 환산 후 게시하였습니다.
3. Honda S2000의 F20C에 대해서는 Wiki(eng)의 [S2000]항목을 참조하였습니다.
4. 신형 5G 그랜저에 대한 자료는 현대자동차의 홈페이지의 제원란을 참조하였습니다.
5. 제가 시승한 시승차의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어떤 루트로든 더 상태좋은 시승차를 시승해 볼 수 있다면 제 견해는 충분히 수정될 수 있습니다.
6. 사실, 전 포스팅 속의 웨딩카 사건으로 알페온 자체가 좋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7. 코멘트는 언제나 환영입니다.